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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93년 결혼했고, 94년 임신 

대구가 지형이 분지라 덥다고 하더라구요 겨울에는 춥고. 

패는 까봐야 안다?그렇지요 나중에 개표를 해봐야알죠요즘 

그래도 패는 까봐야 아는거 아닐까요 !!ㅎㅎㅎ실낱같은 

어제, 오늘 바깥은 한여름 날씨예요. 특히 대구는 많이 

행복님의 것도 사라졌다고 올렸죠? 그 이유가 무언지 궁 

일기가 왜 자꾸 사라질까요?거기에 대한 운영자의 답도 

여행 즐겁게 다녀오셨나요? 그 사이에 내 일기가 또 3 

참으로 오랫만에 이 공간에서 만나니 반가워요하긴 행복님 

그 시절을 겪었던 시대라서 그럴까요? 영화의 전성기여 

찬면이의 전화다.
"당숙 이제서야 인사드러 죄송합니다 너무 바빠서요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그래 네가 수고 했다 잘 마무리 하고 와라"
강인한 인내력으로 오랫동안 곁에 머물줄 알았던 홍래형님.
82세를 일기로 년말에 가시고 말았다.
당신이 그렇게도 애지중지 기르던 배나무와 복숭아 나무들
어떻게 잊고서 그 곁에서 눠 계실까?
다 소용없는 것들을.....
<남산 형님>이라 불렀다.
조부님 돌아가실때 까지 모셧던 큰 집이지만, 남산형님댁이 더 친근하다.
바로 이웃동네라 잘 살던 큰집이 있었던 것은 크나큰 자부심이고 자랑였다.
어렷을때 그래도 넉넉한 살림으로 부러움을 샀던 집였으니............
조부님이 장손도 아닌 네째를 델고서 살면서 살림을 몰려준건 아마도 그 큰아버지가 고분고분하고 일을 잘했던 탓이엇을거 같다.
장남인 장자동 큰 아버진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 부려먹기 힘들어 그랬을거 같고아버진 일을 못해 그랬을거고......
암튼,
아버지 형제들 중에 그래도 아버지가 가장 똑똑한 편이었던거 같다
그 당시에 학교는 못다녔어도 한문공부는 야무지게 배워 동네선 알아준 분였으니까.....
큰 아버지들은 아마도 모두들 까막눈으로 알고 있다.
당신은 동네서 알아주는 훈장이면서 왜 자식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는지?
<시천교>란 종교땜였나?
그 종교에 빠져 온가족을 모두 그 종교에 몰입하게 하셨던 조부님.
모두 한때 그 종교에 빠져 힘들게 사셧단 애길 들었다.
다 추억의 애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