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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이해 그렇네요 받침 하나 차이네요 그런데 그게 

오해와 이해는 받침 하나 차이죠. 다행입니다. 오해든 

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93년 결혼했고, 94년 임신 

대구가 지형이 분지라 덥다고 하더라구요 겨울에는 춥고. 

패는 까봐야 안다?그렇지요 나중에 개표를 해봐야알죠요즘 

그래도 패는 까봐야 아는거 아닐까요 !!ㅎㅎㅎ실낱같은 

어제, 오늘 바깥은 한여름 날씨예요. 특히 대구는 많이 

행복님의 것도 사라졌다고 올렸죠? 그 이유가 무언지 궁 

일기가 왜 자꾸 사라질까요?거기에 대한 운영자의 답도 

여행 즐겁게 다녀오셨나요? 그 사이에 내 일기가 또 3 

-조카 ㅂ 도 그런 직업이 좋아 결혼했었고, ㅈ 씨도 그 명성에 걸맞게 부근의 부잣집 공주와 한평생 인연을 맺어 이어오고 있다.<재단사>는 돈 잘버는 남자의 직업.그런 인식이 박혀있어 결혼조건이 좋은 편이었지.1970년대는 기성복 양복이란 대부분이 입을수 없는 조잡한 것이 었고 매월 월급타면 월부로 양복을 맞춰 입는 재미가 쏠쏠하여 옷 좋아 낭비도많았다.순천에서 첫 시작했을때...처음 탄 월급으로 부모님 내의 한벌과 양복을 맞췄다.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촌티 나는 양복였던가?회색바탕에 십자무늬가 쳐 있는 양복.
북가좌동에선 <한샘 양복점>의 ㄱ 사장.미남에 번듯한 양복을 입고서 재단을 하는 걸 보면 멋있어보여 자주 놀러가곤했지.옷도 자주 맞추고, 그래도 친한 공무원이라선지 가격 좀 싸게 해줬었다.변두리 양복점이 이럴진대, ㅈ 씨는 유명패선이 판 치는 명동 소공동에서 40여년간을 운영했으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 인지는 상상이 간다.
부러움의 대상였던 재단사란 직업.대기업에서 맞춤 못지않은 기성복출시되고 주를 이루자 서서히 사양길에 접어들더니 지금은 그 흔한 00 라사란 간판 찾기가 어렵다.그래도 ㅈ 씨는 성실히 돈 벌어 저축해둔덕에 화곡동에 빌라 두채, 성수동에35 평 아파트가 14 억정도에 거래된단다.겨우 1 억3천에 산 아파트의 가격상승.<아파트 >처럼 부를 가져다 준 재태크가 어디 있었던가?그런 부를 저축할수 있었던 것도 ㅈ 씨의 성실성도 있지만.....한때의 수입을 착실히 저축해둔 덕 였을것이다.
호사다마라고 했지.어떤 어려움 없이 편안히 살줄 알았는데...2 번의 허리수술로 거동조차 어렵단다.
수술은 신중을 기해야 하고, 명의를 찾아 했어야 했는데.... ㅅ , ㅇ 병원에서 두번의 수술이 모두 잘못된 바람에 통증으로 거동조차 어려운 실정이지만............오늘 그래도 견디면서 까치산에 오셔서 모처럼 <청진 해장국>을 함께 했다.-거동이 부자유스러우니 하룻내 티비 앞에서 시간 죽이니 얼마나 답답한지 몰라 이렇게 그냥 살다가 죽을거 같아.-형님 뭐 그런 말씀을 하세요?명의 찾아 다시 제대로 수술하시고 더 사셔야죠.뭐 얼굴은 육십초반으로 보이구먼...-난 자네가 젤로 부럽네.맘대로 걷지 어디 아픈데 없이 어디든 다니지.걷지 못한단 것이 얼마나 답답한지 알아?-이해는 해요.
연상이고, 거동이 불편해서 함께 운동은 못하지만....이런때의 말 동무가 되어줄 친구.그리운 법.-사람은 외로울때의 다정한 친구.그 친구가 얼마나 그립던가.가끔은 어울리면서 ㅈ 형의 친구가 되자.입장을 바꿔보면 이해가 된다.<역지사지>라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