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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93년 결혼했고, 94년 임신
대구가 지형이 분지라 덥다고 하더라구요 겨울에는 춥고.
패는 까봐야 안다?그렇지요 나중에 개표를 해봐야알죠요즘
그래도 패는 까봐야 아는거 아닐까요 !!ㅎㅎㅎ실낱같은
어제, 오늘 바깥은 한여름 날씨예요. 특히 대구는 많이
행복님의 것도 사라졌다고 올렸죠? 그 이유가 무언지 궁
일기가 왜 자꾸 사라질까요?거기에 대한 운영자의 답도
여행 즐겁게 다녀오셨나요? 그 사이에 내 일기가 또 3
참으로 오랫만에 이 공간에서 만나니 반가워요하긴 행복님
그 시절을 겪었던 시대라서 그럴까요? 영화의 전성기여
-아제, 안녕하세요? 제가 어제 어머니와 만났을때 애길 들었어요
아제 거주지가 바로 제가 근무하는 곳이 라고요.
미쳐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시간내서 전화 한번 드리겠습니다 한번 나오세요.
ㄱ 구청장 비서로 발령나서 근무하게 되었단 소문은 형수에게 들어 이미 알고있었다.
거의 20여년의 나이차 나니 먼저 전화하기도 좀 그랬었지.
고종사촌 형님의 막내 아들 <정>
이 조카를 본것이 아마도 5살정도때 였지 않나 싶다.
군 제대후 방황의 시절.
내 거주지가 아닌 외딴 <산포면 사무소>로 발령이 났었었다.
것도 정식아닌 <임시 공무원>의 위치.
집에서 자전거로 통근하긴 사실 너무 먼 거리지만 나주시내선 다리만 건너면 되는
근거리였다.
당시 고종 사촌 형님은 나주 시내서 유명 가구점을 운영중이라 여유가 있었지만...
부모님과 아들 셋을 델고서 사시는 <상윤>형님인들 내가 반가울리 없겠지만...
자신의 어머니 동생인 아버지의 청(?)을 어찌 거절할수 있었겠는가?
아버지의 제청에 고모님이 찬성했던거 같다.
3월에서 9월까지 6개월 동안을 그곳에서 거주했었다.
집은 넓고 여유롭지만, 그래도 딴 식구가 덧붙여 사는걸 아무리 생각해도 좋지는 안았겠지만 전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고서 잘도 살았다.
가장 불편했어야 했던 형수가 좋은 인간성의 소유자라서 더 편하게 대해줘서 편했다.
고종사촌 형님은 그 당시 나주에선 젤로 잘 나가는 가구점을 직접 운영하곤 배운 기술로
목공을 제작하고 판매하곤 해서 돈도 많이 벌었었다.
대로변 큰 상가를 사서 공장으로 운영하곤 그옆은 거주할 방도 6개나 되는 큰 집였지만...
대로변이라 차들의 소음으로 거주환경은 빵점이지만...
내위치가 그걸 따질 처진가?
현 비서실장인 <정>이 바로 5살정도의 애였으니 나의 존재를 어찌 기억할수 있을까.
맘씨 좋던 고모도 가시고 형님도 가시고, 형수님도 그 상가를 세를 주곤 지금은
큰 아들곁에서 사신다.
6개월 동안 머문 그곳 형님의 상가.
그 긴 시일을 함께 했어도 단 한번도 싫은 기색을 못 느끼고 살았던 시절이라 그 형수에 대한 고마움은 지금도 같다.
-형수님, 우리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면서 그 시절 애기함서 즐겁게 삽시다
-네 아제도 건강 잘 챙기세요 오랫동안 건강합시다.
사실 친 형수 보담도 더 정가는 분이 고종 사촌 형수다.
그런 것들이 모두 진정한 마음 아닐까?
조카 <정>을 만나면 그 시절을 애기해줘야지.
얼마나 자신의 부모님과의 사이가 돈독했는가를....